당신은 스스로의 삶과 단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아님 당신의 삶을 한번이라도 배반한적이 있는가?


“나는 의미로서의 사진은 전혀 흥미를 갖지 않고, 찍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생리적이라고 했을 때, 
꼭 의식이 개재합니다. 거기에는 꼭 육체가 같이 혼연일체가 되어 찍습니다. 
그러므로 찍는 순간은 대단히 감각적이고, 극히 육체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Daido Moriya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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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는 육체를 따라다니는 빛나는 그림자이다.사진이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육체는 그림자가 없게 되고. 그림자 없는 여인의 신화에서처럼 이 그림자가 일단 잘려 나가면, 남는 것은 메마른 육체뿐이다. 바로 이와 같은 가느다란 탯줄을 통해서 사진가는 생명을 부여한다. 그가 재능이 없어서든 운이 나빠서든 투명한 영혼에 밝은 그림자를 부여할 줄 모른다면, 사진의 인물은 영원히 죽는다."

롤랑 바르트는 '노에마'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른바 '그것은 존재했다'는 것이다. 사진이 오로지 노에마 밖에 제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 기술 자체에 큰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사진작가들에 대해서 직접적인 비판을 최대한 삼가지만, 이따금 그의 생각이 드러날 때가 있다. 이런 식이다.

"보통 아마추어는 예술가의 미성숙으로 규정된다. 그는 어떤 직업의 숙달의 경지에 오를 수 없는 -혹은 오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사진에서 전문가로 올라가 있는 것은 아마추어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가 사진의 노에마에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진의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은 롤랑 바르트의 입장에서 오히려 아마추어였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기술들, 순간 포착이나 빠른 셔터 속도의 사진, 이중인화 같은 기법들은 롤랑 바르트가 보기에 그들의 예술가적인 미성숙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인물이든 사물이든 무언가가 지닌 고유의 분위기를 포착하지 못한 사진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사진들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여기 좀 보세요. 이게 내 형이고. 이게 어릴 적 나에요."밖에 없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결국 사진은'보세요''봐''여기 있다'가 교대되는 노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나는 롤랑 바르트가 사진을 무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는 사진이 지닌 폭력적인 힘, 다른 말로 하면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눈치채고 그것의 올바른 활용법을 고민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고민의 해답을 어머니의 오래된 사진 속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나 롤랑 바르트의 다른 책들이 그렇듯이 이 책도 마찬가지로 '이것이 해답이다'하고 딱 부러지게 무언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롤랑 바르트가 말한 빛나는 그림자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사진에 대해서,어머니에 대해서,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해답을 고민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 롤랑 바르트 '밝은 방' 중에서 -